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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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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 18. 01:00 글/SS

전작


"그래... 그 녀석이 아직도"

"네. 결국 강경책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가에 이쿠의 말에 태사의에 앉은 곤룡포(袞龍袍)를 걸친 남성은 권태로운 표정속에서 눈을 번뜩였다. 워낙 일순간이었는지라 부복해있던 나가에 이쿠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대소신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눈빛은 분명 '흥미'라 불리는 종류의 감정을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

"하여간 누굴 닮은건지... 참 골치아프게 만드는군"

태사의의 앉아 있는 남성의 말에 그 자리에 서 있던 대부분은 '당신 딸이잖아!'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눈 앞에 있는 남성은 그들의 주군이자 자신들이 함부로 올려다보지 못할 만큼 고귀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외유는 허락했다지만 200년 정도까진 아니야. 슬슬 강제로라도 데려와야겠지."

"그럼..."

"서해랑 북해는 요즘 좀 바쁜듯하니 동해랑 남해 용왕에게서 용장 각 6명씩과 용왕 직할의 어림군 전체를 빌려서 데려오거라."

"넷?"

너무나도 과한 전력에 나가에 이쿠는 자신도 모르게 눈 앞에 있는 남성을 향해 반문했다. 그도 그럴법한게 용장은 용들 중에서도 특별히 무력이 높은 이들로 선발되는 존재들이었다. 단순 전투력만 따지면 투선이나 신장들과도 할만하다고 불리는게 용장이란 존재. 거기다 어림군이면 용왕권역내에서 특출난 환수나 영수들을 모아 만든 용왕의 직속부대였다. 그런걸 이만큼이나, 그것도 오직 한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동원한다는 것은 나가에 이쿠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가 나한테 반문이 가능할 정도의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남성에 말에 그녀는 그대로 머리를 박으며 사죄를 올렸다. 자신은 고작해야 용궁의 사자. 눈 앞에 있는 남성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야 마땅한 존재였다. 그런데 겁 없이 반문이라니...

"이만 물러가보거라. 다음번에 올땐 가급적이면 그녀석도 데려오고. 참 속썩이는 녀석이야"

"예-"

나가에 이쿠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예를 올린후 다급히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자칫해서 눈 앞에 있는 남성이 변덕을 부린다면 자신은 목숨을 부지하기 조차 힘들단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나가에 이쿠가 사라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신하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고작 용궁의 사자에 불과한 아이입니다. 너무 겁을 주신건 아니신지..."

"이쯤은 겁을 줘야 최선을 다할게 아니더냐. 그래야 딸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볼 수 있겠지."

"악취미십니다. 폐하"

"악취미긴, 내 딸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 의무가 있어."

태사의에 앉아 군룡포를 걸친 채 세상을 굽어보는 이 남성의 이름은 진시명. 사해의 모든 바다와 하늘을 책임지는 용들의 신이었다.



"메이링!"

팍-

모자를 꿰뚫고 머리에 박히는 단검. 오늘도 여느때와 같이 졸다가 걸린 홍마관의 문지기 홍 메이링에 대한 처우는 가혹했다. 그나마 킬링돌이 아닌 것은 다행이라 해줘야 하는 것일까?

"아파요 사쿠야씨"

"문지기일 제대로 하지 않고 졸고 있으니까 그러지!"

"너무하네요. 옛날에는 메이링씨 메이링씨 거리며 제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사쿠야씨가 지금은 이런 폭력메이드라니... 전 정말 슬픕니다."

"누가 폭력메이드라는거야! 게다가 그런 고리짝 얘기를 꺼내다니... 오늘도 킬링돌로 벌집이 되고 싶은거야?"

"아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옛날에는 애교로 받아줬지만 요즘 사쿠야의 킬링돌은 너무나도 매서웠다. 아차하는 순간 전신이 꿰뚫려 벌집이 된 채로 명계에 가버릴 것 같아 무서운 메이링이었다. 물론 그정도로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아픈건 아픈 것이었다.

"그나저나 준비는 잘 되어가는 거야?"

"무슨 준비 말씀하시는 겁니까?"

푹-

"아픕니다 아파요!"

메이링이 능청을 떨기 무섭게 머리에 박히는 단검. 단검에 피를 본 메이링은 엄살(?)을 부리며 사쿠야를 향해 말했다. 계속 능청을 떨었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한 결과였다.

"당연히 준비했죠, 얼마 안있으면 플랑드르 아가씨의 500살 생일이지 않습니까."

"그동안은 그분을 '봉인'해 두느라 생일을 챙기지 못했지만 나오신 이상 최대한 화려하게 챙겨드리는게 사용인으로서의 의무겠죠. 메이링씨, 이번엔 아깝더라도 화단이 거덜날 각오를 하세요."

"꽃은 그대로 보고 감상하는게 베스트지 말입.... 아뇨아뇨 당연히 그래야죠."

결국 단검이라는 협박에 굴한 홍 메이링은 눈물을 흘리며 홍마관 정원에 있는 꽃들을 어떤식으로 배치하고 꾸며야 가장 화려할지에 대해서 고민해야만 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플라워 마스터인 카자마 유카의 도움을 얻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최근 기분이 좋지못한 플라워 마스터에 대한 소문도 들은터라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나저나 플랑드르 아가씨가 500살이라.... 홍마관도 벌써 200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슬슬 때움식 보수도 한계니 재공사를 겸한 재단장이 필요하겠죠."

본래 홍마관은 최소 500년은 가도록 설계되었고 또한 강력한 결계로 보호받고 있어서 족히 천년은 버틸것이라 생각했지만 약 3년 전쯤 있었던 홍무이변을 기점으로 홍마관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한 스펠카드룰, 그리고 매번 쳐들어와 대도서관의 책을 강탈하는 마리사 때문에 1000년은 가볍게 갈만한 저택이 금새 한계에 도달해 버리고 말았다. 그동안은 홍메이링과 요정들, 그리고 지하도서관의 파췌리 노우릿지가 임시적으로 보수를 했지만 결국 한계가 오고 만 것이었다.

"그나저나 누구더러 지어달라고 해야할까요?"

"아무래도 지저 아니면 캇파쪽이겠죠? 홍마관 정도의 크기를 지닌 건물을 만들고자 한다면..."

"하아..."

"골치아프네요"

홍마관의 양 기둥. 메이드장 이자요이 사쿠야와 문지기 홍 메이링은 홍마관의 증축에 대한 논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라면 천계의 목공들을 동원하는건 어때요?"

"될 리가 없잖아. 게다가 환상향의 관리자인 요괴현자가 잘도 허락하겠다."

"우우... 하기사."

여느때처럼 놀러온 텐시에게 푸념을 늘어놓은 홍 메이링은 안될일만 말하는 텐시에게 가벼운 태클을 걸었다. 물론 목적을 말하고 요괴현자인 야쿠모 유카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렇게되면 필히 자신의 옛날을 거론하게 될 것이라. 그건 가급적이면 피하고싶은 그녀였다.

"결국 지저인가? 캇파는 맡겼다간 뭘 만들지 모르니"

"오니가 났겠죠. 캇파보다는"

텐시의 말에 홍메이링은 아가씨에게 말한 후 한번 지저에 갔다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플랑드르 아가씨 선물도 아직이었지..."

사쿠야에게는 준비해놨다고 말해놨지만 아직까지 진정으로 선물할만한 물건은 구하지 못했다. 물론 일단 구해놓은건 있지만 이게 플랑드르 아가씨에게 선물할만한 물건이라고는 아직 생각지 않는 메이링이었다.

"천계의 복숭아는 어때요?"

"그건 네가 직접 선물로 주렴"

가급적이면 직접 구한 물건으로 드리고 싶었다.

"음... 향림당에라도 가볼까?"

"향림당 입니까..."

"점주라면 희귀한 물건에 대한 정보도 꽤 가지고 있을테니까."

향림당의 점주 모리치카 린노스케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물건은 왠만해선 안내놓는 남자. 그런만큼 정보를 구하는 쪽이 방법적으로는 나을터였다.

뭐 그 정보도 제대로 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긴 하지만...

"뭐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니더라도 발품 좀 팔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그것도 그렇네요."

"여차하면 명련사의 나즈린씨에게 부탁하지 뭐"

보물 찾기가 주특기인 나즈린이라면 분명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을 것이 틀림 없었다.

"뭐 일단은 아가씨께 허가 받으러 가 볼까?"

홍 메이링은 문지기, 그런만큼 자리를 비우고자 하면 아가씨의 허락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



[목표, 홍마관을 나서는 중.]

"그대로 미행하면서 예상 도착위치를 확정해내. 확정 완료되면 나한테 보내고"

[예스 맴]

끊어진 통신을 보던 나가에 이쿠는 야전복장을 하고 있는 동해용궁과 남해용궁의 어림군을 보며 난감하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환상향의 존재들과 달리 간간히 인간세계에 나가보기도 하는 나가에 이쿠는 인간세계의 군대복을 하고 있는 어림군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며 말했다.

"어림군도 인간계의 물 먹는건가?"

"용신님께서 재미있어보인다고..."

",,,"

어딜가나 문제인 변덕쟁이 용신이었다. 물론 그것을 실제로 내뱉으면 그냥정도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것을 입밖으로 내는 우는 누구도 벌이지 않았다.

"고생이 많구만 너희들도."

"사자인 이쿠님만 하겠습니까?"

"사자는 완전 심부름 센터 취급이라 들었는데요"

"심부름 센터라..."

생각해보면 그랬다. 뭔 일만 있으면 불러서 일을 시키는... 심지어는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지 용궁의 사자란 이유만으로 터무니 없는 일을 시키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불량천인이라 불리는 히나나위 텐시를 가르치는 일. 천계에 있는 천인이 모두 포기했다 하여 자신이 불려갔을때 얼마나 터무니 없었던가...

"우울하다, 죽을까..."

"잠시! 날개옷으로 목메지 마세요!"

순간 우울해진 '임시'상관의 자살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어림군이었다.



"정보인가..."

"네. 작은 아가씨에게 선물할걸 찾고 있는데 마땅한게 없어서요. 뭐 괜찮은 물건에 대한 정보가 없을까요?"

"음, 뭐 있긴 있지만서도. 역시 좀 아까운걸"

"그러지 마시고... 아, 이건 어떠세요? 사나에씨에게 얻은 바깥의 책인데."

"흐음, 교과서랑 사전이란 건가?"

"일단 필사는 끝난데다가 파췌리씨는 별로 흥미를 안가지시는 책이라."

"괜찮겠지. 얼마전에 놀러온 코마치의 말에 의하면 무연총 깊숙한 곳에 뭔가 재미있는게 떨어졌다더군. 난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말이야"

"무연총입니까?"

바깥세계의 물건이 제법 떨어진다는 무연총이라면 확실히 뭔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그곳을 배회하는 사신 코마치가 그렇게 말했다면... 가능성은 10할이었다.

"정보 감사합니다."

"거래니까. 아, 혹시나 해서 묻는거지만... 알고있지?"

"아, 네 알고있어요."

"괜히 걱정했군. 이런 분야는 나보다도 네가 전문일텐데 말이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미소와 걱정은 서비스야"

"그럼 다음에 뵐께요"

향림당의 점주 모리치카 린노스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서는 홍 메이링. 그녀가 나가기 무섭게 가게 한쪽에서 '틈새'가 열리며 한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걱정하는거 아니야? 린노스케. 질투난다고."

"아니 뭐... 마리사정도의 힘을 지닌 녀석들이 숨어서 쫓아다니고 있으니 신경쓰여서 한 말이야"

향림당의 점주 모리치카 린노스케는 약하지만 약하지 않았다. 만약 진짜로 약했다면 홀로 이런곳에 가게를 차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테니까.

"아, 동해랑 남해용궁의 어림군 말이네"

"용궁이면 환상향 바깥의 존재잖아. 괜찮은거야?"

"뭐가?"

"환상향의 '룰'을 집행하지 않아도 괜찮으냐고 묻는거야"

"뭐 처음엔 강제집행하려고 했지만... 노리는 상대가 메이링이니까"

어느새 차까지 꺼낸 요괴 현자 야쿠모 유카리의 말에 린노스케는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너 그녀에게 유감 있는거야?"

"유감이 있냐 없냐로 묻는다면 있다라고 대답해줄께. 뭐 나두고 있는건 그 이유때문이 아니지만"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지? 메이링씨는 마리사한테도 매번 당하잖아"

"정말 질투나네... 저쪽에 가세해버릴까"

"어이어이..."

린노스케가 인상을 찌푸리자 유카리는 농담이라는듯 장난 스럽게 말했다.

"농담이야. 린노스케 넌 홍 메이링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아냐?"

린노스케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환상향 탄막놀이의 강함을 랭킹으로 매기자면 홍 메이링은 중위권, 사실상 하위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정들을 제외한다면 하위권인 탓이었다. 덕분에 일부 환상향 일각에서는 샌드백 문지기 혹은 있어도 없어도 의미 없는 문지기라는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리기도했다.

"확실히 탄막놀이 룰 내라면 홍 메이링은 약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약한건 아니야. 그녀라면 제 1차 월면전쟁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정도의 실력자니까 말이야"

"제1차 월면전쟁에서?"

린노스케로선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히노에다 아큐의 기록과 카자미 유카, 그리고 눈 앞에 있는 야쿠모 유카리의 말로만 듣던 싸움이었지만 환상향 안에서는 누구보다도 그 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니.

애초에 가지 않은 사람을 제외하고 그 전쟁에서 살아남은건 카자미 유카를 비롯한 일부 강한 대요괴뿐. 그런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그 강함은 충분히 증명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강하네."

"그래 강해- 본질이 본질이니까"

환상향 대부분의 인요는 홍 메이링의 본질을 모른다. 그저 기를 다루는 요괴라 말할 뿐. 하지만 그녀의 본질을 아는 야쿠모 유카리로서는 그녀와 그녀를 노리는 자들의 싸움이 기대될 뿐이었다.



"골치아프네."

무연총으로 향하는 제사의 길에서 자신을 뒤쫓고 있던 존재를 기절시킨 홍 메이링은 그들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복색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달고 있는 표식은 분명 남해용왕의 어림군. 이들이 환상향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아버지'가 손을 썼다는 말이나 다름 없엇다.

나가에 이쿠로서는 권한이 안되니까.

"어림군이라... 아버지라면 분명 용장도 동원했겠지"

남해뿐일까? 아니면 사해 전체? 어느쪽이든 귀찮게 된건 확정사항이었다.

"공주님-"

"각오!"

쓰러진 둘 말고 더 있었는지 나타난 사람은 그물을 던지고 최루탄과 태양침을 흩뿌리며 홍 메이링을 압박해갔다.

"후... 하"

쉼호흡을 하며 기를 끌어올린 눈을 번뜩이며 진각을 밟으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극채태풍極彩太風]

맹렬한 바람과 함께 쏟아지는 형형색색의 기탄. 갑작스럽게 부는 맹렬한 바람에 자유를 빼앗긴 어림군은 그대로 이어진 기탄에 난타당해야만 했다. 보통 요정이나 요괴라면 쏟아지는 기탄의 폭풍속에서 난타당하다가 기절했을 것이나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는건 역시 어림군 답다고 할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봐줄수는 없으니까- 상대가 너희들이라면 말이야."

[지룡천룡각地龍天龍脚]

맹렬한 진각과 함께 하늘과 땅 양쪽에서부터 막대한 압력이 어림군을 덮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그대로 압사할 하다못해 몸이 짜푸러져 육포가 될정도의 압력. 아무리 어림군이라지만 그런 압력을 버틸 수 있을리 없었고 결국 압력을 버티다 못해 기절한 어림군을 두고 메이링은 다음 공세를 기다렸다.

"그나저나 200년간 가만히 계시던 아버지가 왜 갑자기 오라고 하는거야. 그것도 강제로... 뭔일이... 있을리는 없나?"

아버지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을까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는 메이링이었으나 이내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변고가 생기는 일은 환상향에서 이변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 이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였던 탓이다. 게다가 이변이 있다고해도 아버지에게 직접적으로 큰 일이 있지 않는 한 갈 생각은 없었다.

"아가씨들이 어엿한 어른이 될때까지 지키겠다고... 그 녀석이랑 약속했으니까"

메이링은 예전에 죽은 홍마관의 전 집사를 떠올리며 아련한 기분에 잠겼다.



"목표, 이쪽을 포착. 가장 가까이 있던 제 1대가 전멸했습니다."

어림군중 한명의 외침에 나가에 이쿠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벌써부터 들킬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탓이었다.

"곤란하네... 역시 아가씨 답달까..."

"어떻게 할까요?"

"뭐 이럴땐 역시 포위섬멸이 정답이겠지? 아가씨는 우리쪽이 능동적으로 들어오길 바랄테니까 그 대신 포위망을 형성해 압박해주는게 좋겠지. 용장님들은 아가씨를 지치게 해주세요"

"그냥 우리들로 공주님을 모셔가는게 좋지 않겠나?"

"그랬으면 좋겠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요."

나가에 이쿠의 능력인 공기를 읽는 정도의 능력은 사용에 따라선 전황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유용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이런식으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아직도 쳐들어오지 않는 어림군에 메이링은 인상을 찌푸렸다. 일부러 상대의 공격을 유도 하고 있었지만 그 의도가 가볍게 간파된 탓이었다. 대신 자신을 중심으로 넓게 군기(軍氣)가 형성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능동적인 공격대신에 포위압박인가. 견실하면서도 빠져나가기 힘든 구성인걸... 게다가 이 기척은..."

촤촤촤촤촤촤-

수풀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6명의 인영이었다. 아까 싸운 이들의 수배나 되는, 격이 다른 힘-

"용장급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저희들은 남해용궁산하의 용장들입니다. 용신님의 명령에 따라 아가씨를 모시러 왔습니다."

"아직 돌아가기 싫은데?"

"이번엔 강제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강제인가... 너무한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튀어나가는 메이링의 몸. 가장 가까이 있던 용장에게 다가가 붕권을 날려 그를 날려버린 메이링은 곧이어 그 옆에 있던 상대를 향해 기공포를 날렸다. 하지만 앞에 다른이가 당하는걸 본 지라 대비하고 있었던 관계로 별다른 재미는 볼 수 없었다.

"역시 용장이란건가. 반응이 빠른걸..."

메이링은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웃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용장들은 현재의 메이링 보다 높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전투경험의 차이가 있긴하지만 이정도 숫자면 메이링으로서도 판세를 뒤엎는건 요원한 일이었다. 게다가 포위진의 군기를 생각하면 용장급이 더 있고 생각하는게 옳았다.

"선물 구하기가 좀 오래걸릴것 같은걸..."

"선물은 구하실 필요가 없으실겁니다. 저희를 따라가셔야 될테니-"

"과연 그럴까?"

메이링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한번 발걸음을 떼었다.



"미령님도 참 저도 데려가시지."

"문지기도 참 너무해"

"그러게 말이죠"

얼음의 요정이자 바보의 대명사로 불리는 치르노와 함께 메이링을 쫓아 무연총으로 향하던 히나나위 텐시는 제사의 길을 지나던 중 보인 시체(?)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환상향이라고 죽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저런식으로 멀쩡한 시체는 보기 힘들었던 탓이었다.

갑작스런 흥미에 시체쪽으로 다가간 텐시는 느껴지는 생기에 많은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멀쩡한 시체란게 어떤지 궁금했던 텐시로선 살아있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던 탓이었다.

"응?"

그렇게 신경을 끄고 다시 날아갈까 하던 텐시는 문득 그 시체가 달고 있는 문장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떴다. 그 표식은 다름아닌 용궁소속 어림대의 표식-

메이링에 의해 용궁에도 자주 놀러간 그녀가 절대 잊을 리 없는 표식이었다.

"설마..."

"왜그래?"

"서둘러야...!"

"잠깐!"

메이링의 위기를 직감한 텐시는 치르노도 뒤쫓기 힘들 정도로 맹렬한 속도로 날기 시작했다.



"후하... 역시 힘의 봉인도 풀리지 않은 상태론 힘든걸..."

잠시 숨을 돌린 메이링은 쏟아지는 낙뢰를 보며 재빨리 발을 놀렸다. 그것은 뇌우라 불러도 될 만큼 조밀한 낙뢰의 세례- 만약 메이링이 보통 요괴였다면 그대로 이 낙뢰세례에 멋진 벼락구이가 되었을 터였다.

"이정도로 심한 난리인데 아무도 안오는걸 보면 역시 유카리가 손을 쓴건가..."

아마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란 거겠지만 솔직히 지금 이 상황에선 너무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봉인을 푼 상태라면 모를까 아직 봉인중인 상태에서 저만큼 준비한 상대를 맞이한다는 것은 등불에 꼬인 부나방이요 불속에 짚섬을 이고 뛰어드는 꼴인 탓이었다.

"용장 둘에 어림군 17인가... 내가 생각해도 칭찬해 주고 싶은 기록이네"

전체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였지만 그래도 이 상태에서 저만큼 쓰러뜨린것은 그만큼 그녀가 전력을 내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봉인만 푼다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서도..."

봉인을 푼다면... 여의주만 사용한다면 어떻게든 싸울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봉인을 풀 시간도 만들기 힘들었다.

"정말 단단히 준비했는걸... 플랑드르 아가씨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포기는 하지 않았지만 반쯤 체념한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몸에 권경을 둘렀다. 권경으로 기척을 지운 메이링은 그들의 인식 밖에서 조금씩. 벌레가 풀잎을 갉아먹듯이 야금야금 어림군을 해치워나갔다. 목을 꺽고 심장을 격하고 뇌를 흔들며. 여러가지 '죽지는 않을' 공격들로 하나 둘 제압해나가던 메이링은 이내 자신을 쫓아온 용장들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권경으로 기척을 죽였는데도 이리빨리 찾아내냐!"

재빨리 발을 떼며 질주하는 메이링이었지만 지친체력으로는 제 속도가 나질 않았다.

"큭!"

작렬하는 뇌전과 화염. 단순하지만 강력한. 그렇기에 위협적인 공격에 메이링은 고통의 신음성을 흘렸다. 몸에서 감각이 사라져가고 동시에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한계인가...."

"이제 슬슬 잡혀주시죠 아가씨. 아가씨 한명으로 입은 피해가 무지막지 합니다."

지금까지 당한 숫자는 용장 둘에 어림군 30... 명백히 말하자면 생각 이상의 피해였다. 메이링은 입을 열기도 힘든지 가쁜 숨을 내쉬며 자신을 바라보는 용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분함을 이기지 못한채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전인류비상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흡사 빔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밀도를 지닌 광탄의 세례가 메이링을 포박하기 위해 접근하던 용장과 어림군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한명의 천인과 요정. 메이링이 메이링으로서 살기 전의 인연인 히나나위 텐시와 메이링으로서 살아가면서 만든 인연인 얼음요정 치르노였다.

"메이링님!"

"메이링!"

""지금 구하러왔어!""

어째서 저 둘이 여기에 있는 걸까? 메이링은 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여기에..."

"너무하잖습니까 메이링님!"

"그래 메이링!"

""왜 저희(우리)에겐 한마디도 않고 자리를 비우신겁니까!(비운거야!)""

"...."

결국 자신이 말도 없이 자리를 비운탓에 그걸 찾으러 온 것이란건가... 메이링은 두사람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했다.

"아하하하하... 이것도 운명의 장난인지"

"에잇 고작 둘이다! 얼른 해치워!!"

해치워라는 말에 반응해 버린걸까, 자칭 최강의 환상향 제일가는 바보요정 치르노는 막대한 냉기를 뿜으며 외쳤다.

"나는 최강이라고! -K!"

치르노의 외침과 함께 떨리기 시작하는 대기. 그리고 그 인근에는 터무니 없는 냉기가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다른 용장중에서도 냉기를 다루는 존재는 몇 있었지만 눈 앞에 있는 요정처럼 터무니 없는 냉기를 다루는 존재는 없었다.

"모두 얼어버려!!"

치르노의 외침과 함께 주변을 휩쓸어버리는 냉기. 조금 떨어져 있던 이들은 가까스로 저 터무니없는 냉기를 막을 수 있었으나 인근에 있던 이들은 텐시와 메이링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아하하하하 나는 최강!"

그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치르노는 승리의 V자를 내밀며 외쳤다. 어이없는 상황이랄까 터무니 없는 상황이랄까 눈앞에 보이는 부조리함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 녀석 분명 요정 아니야?"

"요괴도 저렇게는 못한다고!"

모두가 놀라 당황하는 사이 메이링은 텐시를 불렀다.

"텐시, 잠시만 날 지켜줘."

"봉인을 푸시게요?"

"아무리 너희들이 왔다곤해도 저 숫자를 다 상대하는건 무리니까"

비록 치르노의 '퍼포먼스'에 놀라버렸다고는 하나 상대는 정예병력. 곧 이쪽의 스타일을 꿰뚫어보고 그 틈을 파고들 것이 분명했다.

"최대한 빨리 풀어주세요. 조금 벅찰지도 모르니..."

천계의 보물 비상의 검을 뽑아든 텐시는 어느새 나타난 나가에 이쿠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용궁에서 나섰길래 당신도 나올거라 생각했지만 타이밍 한번 죽여주네"

"전 부지런한 용궁의 사자니까요. 용신님에 명에따라 미령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말은 잘하네"

"환상향에 놀러다니면서 빈정거림이 느셨네요 아가씨"

두사람은 지금 상황에선 지킬 필요도 없는... 지켜도 의미가 없는 스펠카드를 꺼내들며 선언했다.

"현운해의 벼락정원"

"천지개벽 프레스!"

두사람의 선언과 함께 막대한 벼락과 대지의 일렁임이 서로를 향해 쏟아졌다.



"이녀석 냉기만 빼면 벌거 아니야. 전부 결계를 최대치로 한후 접근전을 펼쳐!"

냉기만 막을 수 있다면 근접전에 취약한 치르노를 그들이 이기는 것은 쉬웠다. 그리고 그들이 결계를 전력으로 펼친다면 치르노의 냉기를 막을 정도는 되었다.

"이익-!"

갑자기 자신의 뜻대로 얼지 않자 당황하는 치르노. 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상대는 결계를 극대로 끌어올려 기동성이 상당히 저하되고 원거리 공격이 대부분 불가능한 상황. 덤으로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쯤되면 아무리 바보라지만 수많은 싸움을 계속해온 치르노로선 놓칠리가 없었다.

"내 최강의 공격이라구! 구태(毆颱)..."

그렇게 외치며 손끝에 극한에 냉기를 모으는 치르노. 왠지 한자가 틀린것 같지만 그런건 신경써주지 않는게 치르노에 대한 예의였다. 물론 상대로선 그런걸 알리도 없고 신경쓸리도 없었지만.

"프리즈 스파크!!!!"

치르노가 가장 많이 싸운 상대라하면 요정들 보다도, 요괴들 보다도 인간. 그것도 단 한명의 인간이었다.

그 이름은 키리사메 마리사. 마법의 숲에 사는 인간 마법사. 그녀의 주특기이자 필살기라 할 수 있는 마스터 스파크- 그것을 몇번이고 겪은 치르노는 그 엄청난 빛을 미워했지만 동시에 동경하기도 했다. 가로막는 것을 모두 쓸어버릴 것 같은 막강함. 그것이 최강이라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마스터 스파크를 모방한 이 기술은 치르노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강의 위력을 지닌 공격이었다.

가로막는 것이라면 절대영도로 완전히 얼려 분쇄시켜버리는, 설령 결계로 위력을 감소시킨다 쳐도 절대로 얼어버리는 극한(極寒)의 얼음광선. 그렇기에 치르노는 이것을 탄막놀이할때는 쓰지 않았다.

이런것을 정면으로 맞았다간 요정외에는 어떻게 될지 바보라도 알 수 있었으니까.

"이... 이건 뭐야!"

"겨... 결계가 통하지 않아!"

결계는 충분히 통하고 있었다. 만약 결계가 없었다면 그들은 얼음덩어리가 되는 정도가 아닌 완전 소멸해버렸을 테니까.

"거 봐, 난 역시 최강..."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프리즈 스파크인 만큼 치르노로서는 손하나 까딱할 힘이 남지않았고 결국 겨우겨우 날고있던 치르노는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치르노..."

"한눈 파실 여유가 있으신가요?"

대개 용궁에서는 용궁의 사자인 나가에 이쿠가 약할 것이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있어 나가에 이쿠란 존재는 심부름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용장들은 알고 있다.

나가에 이쿠는 강하다. 왠만한 용들 이상으로 벼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자신의 고유능력인 공기(분위기)를 읽는 정도의 능력을 통해 착실하게 자신의 승리의 반석을 밟아간다. 기본능력만 해도 용장에 밀림이 없는데 그 특유의 능력과 전법을 통해 용장 셋이 모인다 해도 그녀는 경시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가에 이쿠와 싸워서 이기는 환상향의 주민들은 대단하고 할 수 있었다.

"선우후락의 검!"

상대와의 공방속에서 가장 사지로 들어가 그 빈틈을 찌르는 비검. 후의 선이라고 할까? 카운터로선 이만한 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보입니다! 광룡의 한숨."

나가에 이쿠는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의 공격을 예상한 상황이었다. 결국 텐시의 공격은 빗나가고 도리어 그녀를 위기에 빠뜨렸다.

"큭...!"

"이만 물러나시죠 히나나위씨. 용궁으로서도 천계와의 의를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미령님이 부탁했다고... 물러설까봐!"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손을 치켜드는 나가에 이쿠. 그리고 그런 나가에 이쿠를 향해 모여드는 뇌전. 손끝으로부터 막대한 뇌전을 모은 이쿠는 파직파직거리는 스파크를 두른채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용어(龍漁)..."

어느새 그녀가 걸치고 있던 날개옷도 그녀의 회전에 맞춰 맹렬히 회전하며 그녀의 회전을 한층 더 가속 시켰다. 그리고 번쩍이는 스파크는 그 회전에 더욱 맹렬한 번쩍임을 더하며 그 위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 회전이 절정에 달한 순간...

"일렉키델 드릴!"

뇌전을 두르고 쏘아지는 맹렬하기 짝이 없는 회전. 어지간한 방어로는 막는 순간 그대로 뚫려 버릴 것이 분명한 위력- 전인류비상천이라면 저 기술을 집어 삼킬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아까 쓴 관계로 지금은 쓸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카드를 꺼내는 수밖에 없었다.

"세계를 굽어보는 머나먼..."

"잘 버텨줬어 텐시"

또다른 비장의 카드를 쓰려던 텐시는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쏘아지는 일권- 일곱빛깔로 빛나는 터무니없는 빛을 보이며 나가에 이쿠의 회전을 단번에 박살내며 하늘을 꿰뚫는 일권-

"관일홍천건곤권(貫一虹天乾坤拳)"

"미령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복색의, 아니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홍 메이링이었다. 조금 푸른 기운이 감도는 붉은 머리카락. 용궁과 천계의 상징인 날개옷. 진정한 용으로서 자신을 증명하는 여의주. 그리고 평소의 무술가로서의 복색이 아닌 용궁의 용천녀의 복장을 자신에 맞개 개조한 개조복.

이 모습이 바로 과거 수백년전 천계와 용궁에 그 이름을 널리 떨친 용신의 딸. 용신희, 혹은 용천녀라 불린 홍메이링... 아니 진 미령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이 힘... 이게 그 불안의 정체?!"

나가에 이쿠가 용궁의 사자가 된 것은 홍 메이링... 아니 진미령이 용궁을 떠난 후. 더구나 여기에 있는 대부분은 용장 및 어림군이라 해도 대부분 신참들이었다. 용천녀 진미령에 대한 것은 자료로 밖에 모르는 존재들.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지니는 압도적인 힘을. 그 존재를-

"삼라와 만상은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혼돈으로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아니하고 그 뜻이 얽키고 설킨듯 해도 오롯이 하나니..."

"전원 퇴..."

"하늘의 그물은 그 틈이 커보여도 놓치는 일 없으라! 삼라만상森羅萬狀『천라지망天羅地網』"

홍메이링의 외침과 함께 홍메이링과 히나나위 텐시, 그리고 치르노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싸움은 너무나도 손쉽게. 허무하리만큼 손쉽게 끝나버렸다.



"아... 역시 이 봉인 해제술은 이게 문제야"

용궁의 사자 나가에 이쿠와 남아있던 용장 6명과 어림군 50명을 단번에 제입해 버린 홍 메이링은 갑작스럽게 변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불평불만을 터트렸다.

"귀여워!"

"문지기가 다른 사람이 됐다!"

그렇다. 평소의 홍 메이링의 얼굴이 아닌 약간 짜리몽땅해진... 뭐랄까 가끔씩 점주가 보여주는 넨로이드라 불리는 인형과 같은 느낌의 얼굴이 되어버린 탓이었다.

"이래서 봉인 해제하기가 싫었어"

오랜시간을 들여 정식으로 봉인을 해제하지 않는 이상 임시적으로 봉인을 속이고 푸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봉인해제술들은 보통 단점이랄까 부작용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펼친 봉인해제술의 부작용이란 다름아닌...

봉인을 해제하고 사용한 힘만큼 특정부위가 랜덤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어려진다는 점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힘을 쓰진 않았기에 금방 돌아올 것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얼굴을 누군가가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치르노도 텐시도 이제 그만좀 봐줘..."

"이건 사진으로 찍어서 남겨줘야 한다고요!"

"얼음에 보관해버릴까!"

"어째서인지 '모에'상태가 되어버린 두사람을 보며 홍 메이링은 한숨을 내쉬었다.



봉인해제의 부작용이 사라지기 무섭게 무연총 깊숙한 곳을 뒤진 메이링은 만족까진 못해도 나름 납득할 만한 선물을 구할 수 있었고 환상향을 침입한 용궁의 사자 나가에 이쿠를 비롯한 용궁관계자는 야쿠모 유카리를 통해 정중히 용궁에 '반납'했다. 뒤처리를 끝낸 메이링은 곧장 홍마관으로 돌아와 플랑드르 스칼렛의 생일파티 준비에 몰두했고 결국 그녀의 생일 전에 모든 준비를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생일 당일-

"여기 꼬냑 120병 추가!"

"술이란 술은 있는대로 추가해!"

"구이는 된게 없는 거야!"

홍마관의 메이드장 이자요이 사쿠야와 문지기 홍 메이링. 그리고 요정 및 인간 메이드들은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둘째 아가씨 플랑드르 스칼렛의 500번째 생일인 만큼 크게 판을 벌인 것도 있지만 환상향 전역에서 사람... 아니 요괴들이 몰린 탓이었다.

이름있는 곳만해도 야쿠모 유카리와 그 식신들, 영원정,백옥루,명련사,모리야 신사, 요괴의 산 일동, 지령전 등등... 이미 수용인원은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 결국 파티장을 호수쪽까지 넓혀서 겨우 자리를 마련한 홍마관의 사용인들은 그야말로 평소와 다른 피가말리는 공수전으로 파티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서오세..."

파티용품 공수를 겸해 손님안내를 하고 있던 메이링은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젊은 사내를 보며 굳어야만 했다. 메이링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요괴들 중 최상위급의 강함을 지니고있는 존재들은 여지없이 메이링의 앞에선 남자의 존재를 느꼈다. 물론 대부분이 파티분위기가 방해받지 않길 원하기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곳도 오랜만이군."

"아... 아버지가 여긴 어쩐 일로?"

"네가 하도 집에 안오니까 말이지. 잠깐 얼굴이라도 보러왔다. 네 주인에게 안내좀 해다오."

"네..."

미심쩍었지만 아버지에게 대놓고 그런말은 할 수 없었기에 하는 수없이 주인인 레밀리아 스칼렛에게로 안내했다. 사내의 존재를 이미 눈치채고 있던 레밀리아는 홍마관의 주인 다운 우아한 인사로 사내, 홍 메이링의 아버지를 맞이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비랑 다르게 예의가 바르군. 이것도 환상향에서의 생활때문이더냐?"

"뭐 그럴지도 모르지요"

"내가 무엇때문에 온 것인지는 알고 있지?"

"메이링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러 오신거잖습니까?"

레밀리아의 말에 조금 자극을 받은건지 사내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밀리아를 향해 말했다.

"만약 데리러 온거라면?"

"싸웁니다."

"호오? 너와 나의 힘 차이는 알고 있을텐데?"

"그래도 싸웁니다. 홍 메이링은 소중한 저의 고용인이자 가족-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설령 어떠한 존재도 그녀에게 강제하게 두지 않을겁니다."

너무나도 확고한 대답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파티분위기를 깰 만큼 큰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대답 한번 걸작인걸, 좋은 주인을 만났구나 딸아!"

"아... 아버지!"

"뭐, 좋겠지. 500년은 더 기다려 주마"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푸른 빛과 함께 파티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 정말 수난이었어요. 설마 아버지가 오실줄은..."

"좋은 아버지인걸?"

"설마요... 제멋대로 대왕인걸요."

"그냥 제멋대로기만하면 신하들이 따를리 없겠지"

"그건 그래요"

레밀리아로 부터 위로아닌 위로를 받은 메이링은 이내 아직 선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둘째아가씨인 플랑드르 스칼렛을 향해 다가갔다. 플랑드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메이링을 보며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메이링~ 선물이 이렇게나 많아!"

"잘됐네요 아가씨. 그러고보면 저도 선물"

품속에서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보이는 선물을 건네는 메이링, 장난감을 받아든 플랑드르는 무척이나 흥미있는 표정으로 장난감을 휘두르며 물었다.

"메링~ 이건 뭐야?"

"글쎄요. 무연총에서 발견한건데 아가씨의 좋은 대화상대가 될것 같아서요"

"대화상대?"

[안녕하세요~ 카레이도 루비라고 해요!]

"와 지팡이가 말을 한다"

기뻐하는 플랑드르, 그것을 보며 메이링은 선물하길 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해도 메이링은 모르고 있었다. 이 지팡이가 훗날 홍마관을 완괴(完壞)시키는... 만화(萬畵)이변의 원흉이 될 것임을 말이다.

어쨌건 플랑드르 스칼렛이 전면에 나서는 첫 행사인 플랑드르 스칼렛의 500살 생일 기념파티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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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정말 간만에 써보는 글입니다.

문지기의 과거사정의 후속작으로 일단은 쓴겁니다만...

이거 생각해보니 2개월 만에 꺼내는건가...
posted by 히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