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히무란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2012. 2. 1. 23:56 글/아카긴의 의뢰일지

"응?"

LAFI 세컨드로 자신의 퍼스트를 노리던 키나시 타카시를 완전히 보내버린 카자마 료는 뒤늦게 스피어라보의 감시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침입자를 격퇴하고 있는 동안 스피어라보를 들쑤시고 있는 3인의 영상을.

"저 여자는..."

카자마 료는 3명의 남녀중 여자쪽을 유심히 살폈다. 얼굴이 예쁘거다거나 취향이라거나 그런건 아니었다. 카자마 료는 애초에 이성을 비롯한 타인에게는 극단적으로 관심이 없는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눈앞의 화면에 보이는 소녀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는 존재처럼... 한참을 고민하던 카자마 료는 화면안에 있는 소녀에 대한걸 떠올릴 수 있었다.

"과연... 그분, 미네시마 유지로의 딸인가?"

카자마 료는 자신의 은사이자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미네시마 유지로를 떠올렸다. 최강의 광기와 최대의 지성을 지닌 존재. 온화함속에 혼돈을 담고 있는, 솔직한 말로 인간 같지 않은 존재. 그런 존재의 딸이 지금 이 스피어라보에 와 있는 것이었다.

"재미있군. 그분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라."

카자마 료는 유래없이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동안 그녀를 살핀 카자마는 옆에 있을 루리코에게 연락을 넣었다.


"쿨럭-"

코조는 또 한움큼의 피를 토했다. 이미 병은 신체 깊숙히 자리잡은지 오래, 이대로두면 그가 죽는것도 머지 않은 미래의 일인 셈이다.

"괜찮나 코조?"

아몬의 물음에 코조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하, 문제없어."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만."
"큭, 언제 그런거 신경썼던가?"

본래 두 사람은 그렇게 친한편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과 계약관계에 의해서 만나게 된 사이일뿐. 하지만 몇번의 전장을 거치고서 부터 그들은 동료가 되었고 친우가 되었다. 물론 그 시간이 좀 오래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심각하다! 지금 네 상태로는 네가 바라는대로 싸우다 죽지도 못한다고!"
"훗,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아. 버틸 수 있다고."
"허세부리긴."

어느새 나타난 것일까? 기묘한 슈츠를 걸친 고혹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여인이 두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카자마의 측근이자 유니버셜 미채를 사용하는 루리코였다.

"이제 네 몸은 한달도 버티지 못해. 그나마도 병원에서 얌전히 누워 있을 경우지. 지금에와선 하루나 이틀? 이 일이 끝날때 까지 버티는것 만으로도 기적이야."
"기적은 일어나라고 있는거야."
"하지만 일어나는 일은 없지."

루리코의 냉담한 말에 코조는 무참을 바닥에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참을 둘러맨 그는 상관없다는듯 루리코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스의 지령을 들고 왔겠지"
"어, 지금 스피어라보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쥐새끼들의 처리, 나는 정면으로. 아몬은 서쪽으로 우회해서, 그리고 코조 너는 동쪽으로 우회해가면서 처리하라더군."
"그런가.... 그럼 가지."
"부하들은?"

아몬의 물음에 코조는 무참을 살짝 들어올렸다.

"없는편이 더 나아."

그렇게 말한 코조는 자신의 코트를 단단히 잠그며 대기실을 나섰다.


"쳇, 한시간도 못버티는 건가."

문을 해킹하던 미네시마 유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느새 단단한 락이 문에 걸린 탓이었다. 락이 걸린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재빨리 문과 연결된 랜선을 뽑으며 불평을 터트렸다.

"왜 그래 유우?"
"ADEM쪽에서 카자마 녀석에게 걸고있던 해킹이 퇴치당했다. 예상대로라면 한시간하고도 반은 더 버틸 수 있을텐데... 1시간도 채 못견디다니."
"무슨 의미야?"
"키나시 녀석의 능력이 내 생각보다 낮았던지 아니면 카자마 료가 LAFI 퍼스트에 적응하는 시간이 내 생각보다 빠르던지. 어느쪽이든 내 예상이 빗나갔어. 흐음 정보 부족인가?"

유우는 살짝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유우는 자신과 시선을 맞추고 있는 감시카메라를 볼 수 있었다. 그 감시카메라를 보던 유우는 재빨리 주변에 있는 총탄의 탄피를 집어들고 그대로 감시카메라에 던져 렌즈를 박살냈다.

"유우, 그럼 이제부터 어쩔거야?"
"글쎄, 일단은 라이브 섹터로 가볼까? 그곳이라면 카자마의 감시도 허술할테고 말이야."

라이브섹터로 향하기로 가닥을 잡은 유우는 아까 문을 열면서 얻은 스피어라보의 지도를 떠올리며 라이브섹터로 향했다. 라이브섹터로 향하던 중 순찰을 돌던 병력과 몇번의 사소한 조우가 있었지만 미네시마 유우와 쿠레나이 신쿠로에 기습에 의해서 연락하기도 전에 완전히 제압당해 구석에 쳐박히고 말았다.

"흐음, 생각보단 제법이네"
"뭐, 제법 혹독하게 훈련했으니까."

사실 제법으로 끝날만한 훈련이 아니었으나 설명할 방도가 없기에 신쿠로는 담담히 대답했다. 어느새 라이브섹터에 도착한 세사람은 사람들 눈에 띄지않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렇게 조용히 숨어있던 중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사카가미 토마가 입을 열었다.

"저기... 유우"
"왜그래? 급한거라면 근처에서 처리..."
"그런게 아니라. 이곳에 요코타씨의 집이 있으니까 집에 들려서 소식좀 전해주려고."
"흐음?"
"그러고보니 슈우지씨가 말했었지. 지킬 약속이 있기때문에 가야한다고."
"네, 요코타 켄이치씨와의 약속이거든요. 지금 상황에선 지킬 수 없겠지만."

이미 레벨0의 시큐리티는 사용한지 오래, 게다가 이런 살벌한 상황에선 쿄카를 데리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말을 들은 미네시마 유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상관없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상관없으려나. 그럼 일단 그 사람의 집으로 가보지."
"고마워 유우"

그렇게 요코타 켄이치의 집으로 향하기로 가닥을 잡은 그들은 조심스럽게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요코타 켄이치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초인종을 누른 토마는 기세좋게 등장한 아줌마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이 아는 요코타 켄이치씨의 부인 카즈에씨가 아니었던 탓이었다.

"누... 누구세요? 요코타 켄이치씨의 집이 아닌가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당황한 사카가미 토마는 식은 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으며 튀어나온 아줌마를 향해 물었다. 토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줌마에게서 반응이 왔다. 꽤나 험악하단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런데요? 당신은 누구죠? 혹시 테러리스트랑 한패!"

토마는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했으나 그 와 동시에 자신이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것에 대한 불합리함을 느꼈다. 소심한 토마로서는 대놓고 그런 표시를 못했지만 말이다.

"저기, 쿄카나 카즈에씨는 계시나요? 몇번 뵌적이 있는터라 보면 아실..."
"요즘 테러리스트들은...! 윤리고 뭐고 없다니까! 설마 어린아이한테까지 손을 뻗히려 하다니..."
'그건 요즘이고 옛날이고 다를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쿠레나이 신쿠로와 사카가미 토마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겉으로 드러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폭탄은 생각보다 대형으로 가까이 존재하고 있었다.

"놈들은 정치적이라던가 종교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는게 아니야. 그러니까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부적절해. 더불어..."
"신쿠로씨!"
"어, 알고 있어!"

유우가 입을 연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토마와 신쿠로는 재빨리 의견을 교환한 후 유우의 입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토마는 재빨리 뒤에서 유우의 입을 막으려 했고 신쿠로는 복부에 주먹을 날려 유우를 기절 시키려했다. 하지만 그런 둘의 행동을 예측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보고 곧바로 계산한 것일까? 유우는 둘의 연계를 아주 가볍게 피하며 말을 이었다.

"더불어 우리가 테러리스트였다면 체지방률 42%인 당신과 대화할 필요 없이 순식간에 죽여버렸을 테니까 말이야."

싸늘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말에 아줌마의 의심은 한층 더 심해졌다. 신쿠로와 토마는 그런 유우를 보며 '저질렀구나!'를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딱 쫓겨나려던 찰나. 구원의 목소리가 아줌마의 뒷편에서 들려왔다.

"아, 토마 오빠"

청량감을 부르는 어린 목소리. 요코타 켄이치씨의 딸인 요코타 쿄카의 목소리였다. 토마는 반가운 얼굴로 쿄카를 바라보았다.

"쿄카!"
"와~ 토마 오빠다~"

종종 걸음으로 다가오는 요코타 쿄카.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는 어떤식으로든 일단락이 되었다.


"그래? 요코타씨는 일단 무사하다는거네?"
"네, 지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에요."
"다행이다."

아줌마는 토마에게서 요코타씨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토마들에 대한 의심이 풀리기 무섭게 수척한 모습이 되었다.

"쿄카가 지금 저리 활달해 하지만... 사실 아까전까지만해도 내내 울고 있었거든. 정말인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그러고보니 카즈에씨는..."
"그건..."

토마의 질물에 대답하려던 아줌마는 다시 창백해진 안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백해진 아줌마의 표정을 보며 토마와 신쿠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머니?"
"쿄카는... 쿄카는 어디에?"
"응? 그 꼬마 말인가? 방금전에 밖으로 나갔다만?"
"아... 안돼!"

갑작스럽게 혼란상태에 빠진 아줌마를 보며 토마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왜 그래요 아주머니?"
"빨리... 빨리 카즈에씨와 만나지 못하게 막지 않으면..."
"에? 카즈에씨가 어떻기에..."
"빨리!"

아줌마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세사람은 재빨리 밖으로 나서 쿄카를 찾았다. 쿄카를 찾아해메던 사카가미 토마는 인형을 든 채 달려가고 있는 쿄카를 볼 수 있었다. 쿄카를 뒤쫓던 토마는 갑작스럽게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들었다. 쿄카의 엄마이자 켄이치씨의 부인인 카즈에씨의 목소리였다.

"쿄카! 안돼 도망쳐!!"

카즈에씨의 강렬한 절규에 토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빠르기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비통한 표정으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딸인 쿄카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카즈에를 볼 수 있었다.

"제발... 제발 멈춰줘!!"
"엄마, 왜그래?"

카즈에씨의 절규.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쿄카는 의아해 하면서 자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쿄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갈 수 록 카즈에는 절규하면서도 쿄카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토마는 재빨리 몸을 날려 쿄카를 감싸 안았다.

투타타타-

요란한 굉음과 함께 카즈에씨가 들고 있는 총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단발로 끝나지 않고 연사된느 걸로 보아 어설트 라이플 계통인듯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쿄카가 맞는 일은 없었지만 대신 토마의 어깨에 스쳐 지나쳤다. 워낙 미미하게 스쳐지나간지라 크게 상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혈을 동반한 열상 생겨났다.

"큭...!"

토마는 어깨에 느껴지는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느꼈다. 끈적끈적한 피의 감촉을... 그리고 맡았다. 진하디 진한 피의 잔향을...
피의 감촉과 잔향을 맡은 토마는 갑작스럽게 엄청난 두통을 호소했다. 피와 고통. 이 두가지 요소로 인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몸과 뇌가 화신의 피를 깨우려 하고 있는 탓이었다.

'아... 안돼!'

지금 화신의 피가 깨어났다간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가까이 있는 쿄카와 카즈에씨는 100%의 확률로 죽을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화신의 피로서의 토마는 잔혹무비한 존재기에...

"큭...!"
"토마오빠 왜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쿄카는 자신을 안고 있는 토마를 향해 손을 뻗으며 물었다. 토마는 화신의 피가 튀어나오지 않게 하면서 주위를 신경써야했다. 카즈에씨의 상태가 이상한 이상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인 탓이었다.

"토마!"
"신쿠로씨!"

토마는 있는 힘을 짜내 신쿠로를 향해 외쳤다. 토마가 신쿠로를 외치기 무섭게 카즈에씨의 손에 들린 어설트 라이플이 신쿠로를 향해 겨눠졌다. 그리고 약간의 타임을 둔 발사.
카즈에가 절규하며 방아쇠를 당기기 무섭게 수십발의 총탄이 쿠레나이 신쿠로를 향해 쏘아졌다. 아니, 정확히는 쏘아지려 했었다.

파각-

어느새 다가온 것일까? 순식간에 카즈에씨의 곁으로 다가온 신쿠로는 단번에 어설트 라이플을 박살내며 카즈에의 양 팔을 탈골 시켰다. 어떤이유에서인지는 모리겠지만 뇌의 명령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잘못 구속했다간 몸에 큰 손상을 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절묘한 신쿠로의 솜씨에 토마는 화신의 피를 억제하는 중에도 자신도 모르게 감탄성을 흘리고 말았다. 약간 거칠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이뤄지는 기술.

"어떻게 된 거야? 토마군"
"글쎄요... 저도 잘... 큭!"

두통을 호소하는 사카가미 토마를 보며 신쿠로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있었던 일을 기억해낸 탓이었다. 살육자, 화신의 피... 자신조차 채 반응하기 힘들었던 움직임을 보여준 광란의 암살자.

"위험해..."
"토마, 살해충동을 억누르지말고 방향성을 바꿔. 그럼 한결 편해질거야."
"유우씨?!"

어느새 나타난 것일까? 쿠레나이 신쿠로 옆에는 노트북을 옆구리에 낀채 사카가미 토마를 보고있는 미네시마 유우가 있었다. 유우는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의 렌선을 꺼내 카즈에씨의 목 뒤쪽 부분에 연결했다. 그것을 본 신쿠로는 의아해 하며 유우를 향해 물었다.

"유우씨, 이건?"
"긴급 코드를 넣었어. 이제 괜찮아. 탈골시킨 부분은 재빨리 원상복구 시키도록."

유우의 말에 신쿠로는 재빨리 카즈에씨의 양팔을 다시 끼웠다.

"그나저나 참 아이러니한 일이야... 10년 전에 내가 만든 발명품이 이런식으로 쓰이고 있을 줄은..."
"내가... 만든?"
"그래, 내가 만든. 브레인 프록시, 그게 이 물건의 이름이야. 사람의 목 뒤부분에 이식해 하반신 마비등의 마비계통의 질병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한 물건이지. 그런데 이게 이런식으로 쓰이게 될줄은..."
"유우..."

유우의 말에 어느새 화신의 피를 진정시킨 토마가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유우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일까 유우는 자신이 만든 브레인 프록시를 발 치에 집어던진 후 그것을 밟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이걸 만든걸 후회하지 않아... 절대로."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후회와 비통의 기운이 물씬 풍겨지고 있었다.


"한동안 안정을 취하면 괜찮을거야. 브레인 프록시에 의해서 강제로 혹사된 피로가 몰려와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것뿐. 그 이외에는 문제 없어."

요코타 카즈에를 비롯한 라이브 섹터에 존재하고 있던 모든 브레인 프록시의 피해자들을 모두 구해낸 미네시마 유우는 그들의 몸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책임의식 때문인지 그들의 몸을 살피는 유우에게선 묘한 기백이 느껴졌다.

"다행이네."
"고맙구나, 구해줘서."
"단순한 책임일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유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노트북을 닫았다. 살짝 초췌해진 모습으로 보아 의외로 심적 고생이 심한듯 싶었다.

"고마워 언니"

인형을 안고 달려오는 쿄카. 그런 쿄카의 모습을 본 유우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물론 너무 미미한 탓에 그걸 발견한 사람은 내내 유우를 바라보고 있던 토마 뿐이었다. 쿄카와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유우는 이내 피곤한 기색을 살짝 내비치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토마는 다른사람들 몰래 유우 뒤를 뒤쫓았다. 화장실에서 잠시 얼굴을 씻은 유우는 그대로 거실에 앉았다. 토마는 조용히 유우 옆에 앉으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인형에 안좋은 기억이라도 있어?"
"..."

토마의 질문에 입을 다물고 있던 유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이렇게 네 앞에서 흔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명쯤은 푸념할만한 사람이 있는것도 좋겠지. 5살때쯤 이었을까? 그때 당시 나는 미네시마 유지로에게 엄청 혼났지. 이런것도 계산 못하냐고, 이정도 이론도 구축 못하냐고 말이야."

지금의 모습을 보자면 왠지 납득이 안간달까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토마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렇게 울적해 하던 나는 자주 공원에서 훌쩍거렸지. 그러던 중 한 노인과 친해지게 되었어. 그 노인은 내가 울적할때마다 위로해 줬었거든... 그러던 어느날 그 노인이 곰인형을 나에게 선물로 줬지."
"좋았겠네"
"응, 그때는 폭신폭신 하고 부드러운 미지의 감촉이 엄청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페르마의 정리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지.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일찍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하러 갔었어. 하지만 노인은 없었지... 그리고"
"그리고?"
"내가 노인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연구소는 반파되었어. 폭발물이 터진거였지. 그리고 그 폭발물이 숨겨져있던 물건은 내가받은 곰인형이었고 말이야."
"..."

유우의 말에 토마는 어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받은 곰인형이 폭탄이었다니... 그런 충격적인 기억을 상기시킨 자신의 둔함이 참으로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에게 선물을 준 노인이 모국의 스파이로서 수배되었었지. 스파이로 수배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노인은 입막음을 당한건지 시체가 되어 강에 떠 있었어..."
"유우..."
"그때부터 인형에는 왠지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지... 좀 처럼 내색하지는 않지만 인형만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버려서 말이야. '아, 나는 미네시마 유지로의 딸이구나.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그렇지 않아 유우!"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거지?"
"너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게 아니야! 너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방금전 아주머니만 해도 너에게 감사인사를 했잖아"
"물론 그 감사인사에는 순수한 감사의 마음도 담겨있었지만 말이지. 거기에는 혐오감도 은연중에 담겨있었어. 왜 그런걸 만들었냐라는..."
"과민반응일 뿐이야."
"아니, 과민반응이 아냐. 어차피 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 미치광이 과학자 미네시마 유지로의 딸이니까.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며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니까."
"그렇지 않아... 나는 유우를..."
"두사람, 조금 조용히 해주지 않을래? 자고있던 사람들 깰라"

어느새 나타난 것일까? 신쿠로는 토마와 유우에게 조용히 해달라 부탁하며 사람들이 자고있는 침실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맥이 끊기자 뻘쭘해진 토마는 얼굴을 붉힌채 고개를 돌렸다. 그런 토마를 보며 유우는 궁금한듯 물었다.

"토마, 아까전에 하려던 말이 뭐지?"
"아니... 아무것도."
"시시하기는..."

유우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소파에 늘어졌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토마는 분위기를 바꿀겸 유우에게 물었다.

"저기 유우. 넌 뭣때문에 스피어라보로 왔어? 단순히 ADEM의 요청만으로 온건 아닌듯한데..."
"알고싶어?"

토마의 질문에 유우는 유래없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토마를 향해 물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엄청 무서워진 유우였지만 토마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토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우는 차가운 표정을 유지한채 말을 이었다.

"내가 이곳 스피어라보에 온 목적은 말이야... 이곳 스피어라보를 점거한 미라주의 리더 카자마 료를 죽이기 위해서야."

그 말을 내뱉는 유우의 표정이 왠지 아름답다고 느껴버린 토마였다.


몇시간이 지나고 토마가 유우의 옆에서 잠들기 무섭게 유우는 재빨리 노트북을 열어 엄청난 속도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카자마 료의 빈틈을 찾으려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빈틈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적응이 빠른건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크나큰 미스였다. 카자마 료가 LAFI 퍼스트에 완전히 적응해 버린다면 그때부터는 적 몸 안에서 싸우는 것이랑 다를바 없기 때문이었다.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라면 내일 정오쯤이면 완전히 적응해 버릴 것이었다. 더불어 자신의 독캡슐 제한 리미트도 그쯤...

"이거 조금 힘들지도..."

유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최고의 내일이 될지 최악의 내일이 될지 지금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것은 다 해야만했다.

=================================================================

이벤트의 변화가 대폭 큰 의뢰일지입니다.

이번에 가장 큰 변화점이라면 토마와 유우가 서로를 알게모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겠네요.

약간 뜬금없는 감이 없잖아 있으면서도...

그래도 이런게 또 괜찮지 않습니까.

뭐... 늦은점에 대헤선 잠시 사죄를...

간만에 랑그릿사2에 빠져있던 터라...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 > 아카긴의 의뢰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카긴의 의뢰일지[7]  (0) 2012.02.02
아카긴의 의뢰일지[6]  (0) 2012.02.02
아카긴의 의뢰일지[4]  (0) 2012.02.01
아카긴의 의뢰일지[3]  (0) 2012.02.01
아카긴의 의뢰일지 [2]  (0) 2012.02.01
posted by 히무란